클루지 Kluge

보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나면 유지보수를 한다. 오류를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그램은 ‘레거시’라 불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버겁다. 물론 더 좋은 설계기법이나 구현 방법이 있지만, 레거시 프로그램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면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방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해결책을 클루지라고 한다.  

인간의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마치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신체 구조와 기능은 완벽한 설계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볼까? 척추는 불안정한 기둥이다. 망막은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다. 목소리는 음식 섭취 기관을 이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진화의 정점이 아닌 중간 능선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나 우리 신체에도 클루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과거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능이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버그로 동작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해와 편견으로 오판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심리적 기제들이다. 이 책의 주제는 그런 심리적 기제들을 소개하고,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가져왔던 궁금증이 풀린 것도 있고, 내 속에 두드러진 클루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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