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댄스

 

댄스 댄스 댄스 – 상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문학사상사

킨들을 구입하고 첫번째로 읽은 소설, 처음은 다소 지루했다. 예전만큼 빠져 들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키의 소설이 이랬었나? 킨들로 읽기 때문인건지, 세월이 흘러 감성이 예전과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더 읽어보면 알 수 있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읽어 나갔다. 그렇게 몇번의 낯섬을 지나치니 다시금 하루키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킨들이 낯설어 책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가, 점점 킨들에 적응되면서 제자리를 찾은 듯 싶다.   

그는 삿뽀로에 있는 이루카 호텔을 동경한다. 오래 전 키키라는 여인과 함께 지냈던 호텔. 

어느 날 문득 주변의 일상을 한달 쯤 멈춘 후 동경하던 호텔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늘 동경해왔던 호텔을 찾았으나, 현대식으로 바뀐 호텔 앞에서 옛 모습은 전혀 찾을 길이 없어 당황한다. 체크인을 하면서 프로트의 직원들에게 옛 호텔에 대한 질문을 해봤으나,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 프론트의 여직원인 유미요시는 호텔에서 기이한 일을 경험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6층 직원 탈의실을 가려는데, 전혀 다른 층에 내린 것이었다. 그 층은 깜깜했고, 공기의 느낌도 전혀 틀렸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방에서 새어 나오는 유일한 불빛을 보고 찾아가 노크를 했다가 이상한 느낌에 뒤돌아 그대로 도망을 쳤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기까지의 짧은 듯 긴 기다림의 시간을 채웠던 슬리퍼 소리는 그녀에게는 두려운 기억이었다. 그날의 일을 상관에게 보고 했지만, 상관은 왠일인지 둘만의 비밀로 덮어두자고 한다. 

유미요시는 로비를 지나던 그를 불러 렌트카 이야기를 하며 프론트 구석자리로 안내한다. 옛 호텔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그녀의 기묘한 경험에 대해서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에서 그녀의 기묘한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자신도 기이하게 생각될 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술과 곁들인 저녁을 먹고 그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준다. 그는 유미요시와 잘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그녀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오늘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호텔로 돌아온다. 

그는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유미요시에게서 들었던 그 어둠의 층에 가면 예전의 이루카 호텔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역한 기대감, 그리고 달리 할 만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마침내 어둠만이 존재하는 층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어두운 복도 저편에 있는 희미한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그는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서 양사나이(양의 탈을 쓴 사나이)는 그를 기다려 왔다는 말과 함께 그를 위해 세상을 이어주고 있다는 등의 말을 해준다. 그런데 그곳은 이상하게 추웠다. 

그 이상한 만남 후 그는 도시를 걸어다녔다. 아는 사람도 없고, 별달리 할 일도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느 거리에 있는 극장에서 중학교 동창이 나온 영화를 발견하고는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핸섬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친구, 고혼다는 배우로서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었다. 무심코 영화를 보던 중 키키를 보았다. 친구의 상대 여배우로 키키가 나왔던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의 이루카 호텔을 찾아오게 만든 그녀를 영화에서 보게 되다니. 그는 고혼다를 만나 키키에 관한 이야기를 묻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호텔로 돌아온 그는 돌아갈 채비를 하고 프론트에 체크아웃을 한다. 프론트의 그녀는 돌아가려는 그에게 여자아이를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곳에 묵고있던 여자 사진작가의 딸인데, 딸을 홀로 두고 해외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듯 유키란 여자아이는 담담히 따라 나선다. 

유키는 세상을 향한 귀를 닫은 듯 늘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남아 도시를 함께 드라이브를 한 후 함께 비행기를 타고 유키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집에 돌아온 그는 친구인 고혼다와 연락하기 위 해 그의 매니지먼트 사무실에 연락하여 메모를 남긴다. 고혼다와 그는 친하지도 않았고, 사는 방식도 달랐지만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고혼다와 만난 그는 키키에 대해 물어본다. 키키는 고혼다가 자주 불렀던 콜걸 중 한명 이었다. 고혼다 또한 키키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식사와 술을 함께 하며 키키, 사는 이야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고혼다의 집에서 콜걸을 불러 밤을 지샌다. 그와 밤을 지낸 메이라는 아가씨는 그에게 매력을 느껴서인지 명함을 챙겨 떠나간다.  

어느날 유키와 만나기 위해 나서던 그는 메이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어 경찰서에 가게 된다. 메이는 호텔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그녀의 지갑 깊숙한 곳에 있던 그의 명함 때문이었다. 유키가 기다릴 것을 염려한 그는 전화하여 오늘 못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는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유치장과 심문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지만, 고혼다가 불렀던 콜걸이 메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그에게도 고약한 일이 생기게 될 것을 염려한 그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유키의 어머니는 유명한 사진작가였고, 아버지는 유명한 작가였다. 유키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변호사를 통해 그를 경찰서에서 나오도록 도와준다. 

평소 아버지와 별 내왕이 없었던 유키였다. 그 일 덕분에 유키와 연락하게 되었던 유키의 아버지는 그를 집으로 초대하고는 유키를 부탁한다는 말을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매일 몇시간씩 친구처럼 지내달라는 말과 함께 보상을 약속한다. 그는 거절했고, 단지 내킬 때 친구처럼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유키의 아버지는 천재작가로 등단 하였으나, 지금은 그 천재성을 잃고 살아가는 상업작가였다. 유키의 어머니는 유명한 사진작가인 아메였다. 끼가 넘치면 주위의 모든 것을 잊고 발산해야 하는 재능을 가진 여인. 둘의 만남이 유키 아버지의 천재성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 아닐까하고 그는 생각했다.  

유키는 어머니가 하와이에 있는 것을 알고 하와이에 가기로 한다. 그런 유키와 동행하게 된 그는 하와이에서 2주간 편안한 일상을 보낸다. 슬슬 돌아가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떠나기 전 유키와 함께 아메를 만나러 간다. 하와이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사고로 한 팔을 잃은 백인과 함께 지내고 있던 그녀는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는 딸인 유키에게도 훌륭한 재능이 있으며, 지금은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메는 자신의 재능과 넘치는 끼를 주체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백인 친구에게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아메를 보살피던 백인의 죽음, 키키와 닮은 여자를 쫓아가다가 들어선 낯선 방, 그곳에서 만난 여섯개의 해골, 고혼다의 자살.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뚜렷하거나 모호한 일들을 차례로 겪는다. 마치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 그의 인생을 플로어 삼아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는 현실의 스텝에 대해서는 묘하리만치 거리감을 두고 그저 바라본다. 그러나 비현실의 스텝에 대해서는 현실을 잊고 몰두한다. 현실과는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인생이랄까?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이랄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철학자 스타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 중 모녀 사이인 아메와 유키, 우리 말로 눈과 비를 의미했던 것 같다. 눈과 비는 태생은 같으나, 공존할 수 없는 존재다. 참 멋진 작명이다. 

오랜만에 잡은 하루키의 소설, 늘 등장하는 비슷한 성격의 주인공을 통해 듣는 하루키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무척 많은 것들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나온 일본의 티브이 프로를 보고 싶다. 어떤 말투인지, 태도는 어떤지, 어떤 버릇이 있는지 보고 싶다. 소설과 수필을 통해 갖게 된 그에 대한 인상이 실제로 얼마나 일치할 지 궁금해 진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양의 모자(탈)을 쓴 사나이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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