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당신들의 천국10점
이청준 지음/문학과지성사

소록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아픔, 강자의 이타주의가 약자에게는 괴로움일 수도 있다는 사실, 당신들의 천국에 담긴 반전을 보면서 작지만 생생한 역사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다. 사실 이청준이라는 소설가도 익히 들었었고,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과 영화가 있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읽어본 적도, 영화 내용에 대한 기억도 없는 상태라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짐처럼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런 짐을 이제야 벗어놓았다는 기분에 홀가분함마저 든다. 브라보.

소록도에 부임한 조원장은 침체된 섬 분위기와 그에 동조하는 관리자들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군인답게 섬의 분위기와 나환자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추진하지만, 알 수 없는 강한 반발에 부딪혀 답답해 한다. 그 과정에서 일제시대 부임했었던 원장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추진 했었고, 그 결말이 모순과 함께 비극으로 끝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예를 들자면 자신들을 위한 공원을 힘들게 만들었으나, 정작 외부인들을 위한 전시용 일 뿐 유지보수에만 매달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결국 원장은 살해를 당하고, 비극 속에 깊은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섬 주민들은 또다른 비극에 대한 두려움으로 본능적인 저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시대에 시작은 선의였으나, 지도자인 원장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변질되어 도를 넘어서면서 악순환을 반복하여 결국 비극에 이르렀던 과정에는 동상이 있었다. 지도자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변질되는 과정의 원흉이 원장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었던 것이다.

조원장 또한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길을 따르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보이지 않는 방해를 받는다. 그런 반대에 맞서 조원장은 섬 주민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의지와 진정성을 담보로 하여 섬 주민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조원장은 섬 주민들을 위해 간척사업을 시작한다. 불가능해 보였던 계획은 많은 난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실현 가능성을 점점 높여만 가고 있었다. 평생을 약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소록도 주민들의 희망이 쌓여갈 무렵, 육지의 건강인들과 정치인들은 그 희망을 빼앗아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술수를 부리기 시작한다. 조원장은 그에 맞서 보지만 그의 힘은 미약할 뿐이었고, 다른 기관으로 전출되면서 간척사업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간척사업의 진행에 따라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당신들의 천국이란 제목의 의미가 반전처럼 확 와 닿았다. 소록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고행을 감수했지만, 결국 그 과실을 맛보는 것은 타인이었다. 시작은 자신들의 천국이었으나, 결말은 당신들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시 묻혀져 가던 어느 날, 조원장은 은퇴 후 소록도에 거처를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진심을 이어 나가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병력자와 건강인의 결혼을 주선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결혼을 통해 나환자(병력자)와 건강인이 다르지 않음을 알리고 섬을 화해의 장으로 만들어 가려는 의도를 주례사에 담아 연습을 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천국을 만들기 위한 조원장의 진심은 계속될 것이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섬 주민들이 왜 조원장의 선한 의도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조금씩 사정을 알게되고, 당신들의 천국의 의미를 짐작하게 되면서 그들의 속내를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조원장의 신념과 희망은 섬에 묻혀있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 냈고, 주민들은 되살아나는 그 아픈 기억을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희망이 꺽여 고통이 되는 과정을 몇번이나 겪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절망을 상기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 함부로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섬에는 그들만의 천국이 분명코 존재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섬 주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천국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이 바로 천국에서 보낸 시기 아니었을까.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희망을 가진 자에게는,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면 그 시간들이 바로 천국인 셈이다. 천국은 희망과 함께 공존하는 관념인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천국, 절망이 있다면 지옥, 이도 저도 아니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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